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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왜 45세 정년이 될 수 밖에 없는가 (기술기업의 관점에서)

January 27, 2015 - 기록 (세상의 기억)

(펌글) 왜 45세 정년이 될 수 밖에 없는가 (기술기업의 관점에서)

출처 : http://windy96.egloos.com/3495731

(방문하셔서 댓글들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 중 하나는 한국은 원천기술, 기반기술이 취약하고 응용기술만 발달했다는 것이다. 특히 공학 쪽에서는 상당히 많은 부분의 기술이 미국와 일본의 발달된 인프라에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를 예로 들자면, 생산에 관련한 다수의 장치는 일본과 미국의 전문업체에 의존하고 있고, 설계에 관련한 툴들도 모두 미국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 시장의 규모의 경제 때문에 이런 식으로 분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세계적인 트렌드이지만, 한국이 그 중에서 어떤 부분에서 중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반도체 업계에서 가진 위치에 비해 초라하다.

차원을 좀더 끌어올려서 소프트웨어 혹은 지적재산권에 연관해서 생각해보면, 더욱더 취약하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프로세서나 운영체제, 컴파일러, 데이터베이스 중에서 세계적으로 유의미한 점유율을 가진 것이 없다. 미국 빼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할 수 있지만, 심지어 다 같이 쓰는 리눅스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기여한 바는 매우 적다. Linux나 gcc, apache에서 한국 사람 이름 보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며, 그나마 한국 사람이 commit에 깊게 관여되어 있기도 한 hadoop 같은 경우는, 사실 그 분은 미국 회사 소속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순수히 한국에서 이런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바는 0에 가깝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렇게 기반 기술에 대해서 연구, 공부가 부족하다 보니,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가져와서 쓰는 것이다. 그리고 가져와서 쓰기 위해서는 매뉴얼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 영어가 필요하다. 실제로 반도체 설계에 사용되는 툴이나 다른 기업이 만든 IP를 가져와서 칩을 제작하는 경우에, 기업에서 실제로 필요한 인력은 영어로 된 문서를 읽고 빨리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실제 제품에 적용하는 능력을 갖춘 인력이다. 현장에서 목격한 바로는 이걸 제일 잘 하는 애들은 좋은 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들어와서 몇년 경력을 쌓은 애들이다. 이들은 6+3+3+4+2(석사까지)=18년 동안 공교육, 사교육 열심히 받아서 배운 능력으로 남이 만든 기술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가를 ‘익히는데’ 젊음을 바치고 있다.

서글프게도 이 모습은 70, 80년대 공장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4년제 대졸자가 하던 수준의 일을, 이제는 대학원 나온 석사들이 한다는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당시 신문 지상을 장식하던, 미국 기업과의 기술제휴 혹은 기술이전을 떠올려보자. 이런 기술을 받아오기 위해서는 기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정을 어떻게 셋업해야 하는지를 배워와야 했고, 좋은 대학 나오고, 영어 문서를 독해할 수 있는 인력들이 파견되어서 혹은 미국에서 온 엔지니어에게 교육을 받아가면서 공장을 셋업했다. (그 때는 몰랐다. 왜 미국기업이 돈 벌 수 있는 기술을 무료로 혹은 염가로 이전해주는지를. 알고 보니 그게 전부 노동 집약적, 24시간 공장을 돌려야 해서 미국에서는 그런 일을 할 인력을 구할 수 없어서, 혹은 환경 파괴나 산업 재해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을 후진국으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이렇게 남의 것을 습득하는 것에 머무르다 보니, 실제로 머리를 써야 하는 것은 단순한 트릭 같은 것이다. 어떤 문제 상황이 주어졌을 때, 이것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가,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가, 일반해를 찾자면 어떻게 되는가, 더 좋은 방법은 없는가와 같은 고민은 전혀 하지 않은 채, 3일 내로 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막으려면 툴에서 무슨 옵션을 써야 하는가와 같은 지극히 ‘실용적인’ 문제로 치환하게 된다.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딱히 대단한 기술 개발이 되지를 않는다. 전부 ad hoc 방식으로 해결하고, 논문이나 특허로 발전시키기 힘든, 혹은 그 수준이 높지 않은 것이 되기 십상이다.

사실 이게 모든 악의 근원이다. 기술력의 부재. 원천기술의 부재. 단순히 뭔가를 뚝딱뚝딱 해서 돌아가는 것을 만들면 되기에 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단순 작업을 하고. 그러다 보니 숙달되는데 시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어느 정도 하고 나면 누구나 다 비슷해진다. 그래서 개발을 10년 하면 전부 매니저 트랙으로 간다. 어떤 사람은 5년만에 모든 걸 깨우치고 매니징 능력을 갖추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7년이 걸리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10년 쯤 지나면 조금더 빨리 하고 아니고 정도만 차이가 나지, 다 비슷비슷한 실력을 갖추게 된다.

여기서 기업은 선택을 한다. 이만큼 숙련된 애들을 어떻게 써먹을 것인가. 대부분의 선택은 일부는 남기고 나머지는 자른다는 것이다. 승진할 수 있는 인력의 수를 제한하고, 그 문턱을 못 넘은 사람들은 조직에서 밀려난다. 이건 조직이 발전하기 위해서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문제는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이미 이들은 대부분 숙련되었고, 딱히 더 익힐 능력이 없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기술에 적응하는 문제만 남았지, 본질적으로 문제 해결 능력이라든지 창의력이라든지 통찰력 같은 것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그러면 여기서 조직에 어필하는 방법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윗선에 잘 보여서 줄을 잘 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랫사람들을 쪼아서 성과를 내는 것이다. 어차피 일 자체가 대단한 창의력과 머리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대체로 투입 시간과 성과가 비례하고, 그래서 회사에 야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양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낸다. 그래서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회사에 남아서 자기 밑의 사람들을 퇴근 못하게 하고, 자기도 남아서 열심히 야근을 하면 더 많은 성과를 올린다. 그렇게 남의 가족도 생이별을 시키고, 노총각 노처녀를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호경기, 기업이 잘 나갈 때는 문제가 없지만, 경기가 위축되거나 시장 점유율이 떨어질 때가 문제다. 해마다 기업에는 ‘잉여 관리자’들이 양산된다. 이미 5년 10년이면 매니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데, 15년 20년 된 사람들을 높은 연봉을 줘가면서, 심지어 자녀 학자금까지 줘가면서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명예퇴직을 시키고, 조직을 개편한다. 아니, 심지어 기업이 잘 나가고 있더라도, 더 높은 자본이익율 달성을 위해서 인력 감축을 상시로 한다. 이런 식의 특별한 명분 없는 layoff는 ‘구조조정’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되고, 조직에 건전한 긴장관계를 만들어서 성과를 높인다는 식으로 어용경제연구소에서 열심히 보고서를 쓰고 언론에서 발표한다.

자, 그래서 이 과정에서 버티지 못하고 나온 사람은? 할 일이 없다. 중소기업에 가서 ‘매니저’ 일을 계속 하거나, 치킨집 차리는 것이다. 딱히 대단한 기술이 필요없는 직종에서 이러는 것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문적인 기술, 특히나 기술집약적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것은 그 기술집약이라는 것이 남의 것을 사와서 내가 이용하는 식의 ‘집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회사에는 종종 나이 많은, 백발이 성성한 프로그래머가 보이기도 하는데, 한국에선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java를 만들고, java를 더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던 사람은 어디 가든 쓸모가 있지만, java 응용 프로그램 중에서 어느 파트를 하나 맡아서, 이를 테면 클라이언트단에서 통신 프로그래밍을 주로 하던 사람은 그 기술이 도태되고, 새로운 기술이 사용될 때, 새로운 기술을 익힌 젊고 인건비가 싼 인력으로 대체된다. 기술 개발을 하는 사람은 ‘정년’이 없지만, 기술 이용을 하는 사람은 정년이 빨리 온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우리 나라가 그 분야 기술의 이니셔티브를 쥔다면 문제는 해결된다. 말은 쉽지만, 이게 쉬운 일인가. 몇가지 예를 들자면 이렇다. 기업이 단순 노가다가 아닌 근본 기술을 확보하고 그것을 통해서 이윤을 창출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정부는 실제로 이런 이윤 창출이 가능하도록 특허 출원을 원하는 기업에는 지원을 해주고, 오픈소스에 대한 작업을 대학과 기업에서 많이 할 수 있게끔 프로젝트 지원을 해야 한다. 별 의미도 없는 이상한 자격증 몇개 가지는 대신에, 오픈소스 활동 경력을 기업에서 더 인정해준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반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에 대해서 지원해주고, 대학에서 기업으로 발전하는 스타트업 경로를 더 많이 열어줘야 한다. 미국 정부가 컴퓨터 기술 발전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했고, 얼마나 많은 오픈소스가 그것들을 바탕으로 생겨났으며, 또 얼마나 많은 상업화 시도가 일어났는가를 상상해보라. 그냥 거저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다.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이런 것 없이는 제아무리 석사 박사를 해도 결국 45세 치킨집 신세를 면하기 힘들고, 18년 공부해서 18년 돈 벌이도 못하는 결과가 생겨난다. 당장 무슨 핸드폰 5, 6가 나오는게 중요한게 아니고, 이런걸 가이드할 수 있는 정부, 정치세력이어야지, 일자리를 챙길 수 있는, 장기적인 수권능력을 가진 세력이 되는 것이다.